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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용산공원 장교숙소 5단지, 붉은 벽돌 위의 초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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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 장교숙소 5단지, 붉은 벽돌 위의 초여름

서울에서 미국까지는 횡단보도 하나다. 서빙고역 1번 출구를 나서면 길 건너가 곧장 정문인데, 장마를 코앞에 둔 6월 말의 하늘에는 구름이 크게 몰려다니다가 이따금 그 사이를 벌리고 철 이른 한여름 볕을 쏟아 놓는다. 신호를 기다리는 잠깐 사이에도 볕이 목덜미에 얹혔다 걷히기를 되풀이해서, 깃 안쪽은 벌써 눅눅하고 마음은 벌써 저 담장 안에 가 있다.

정문 너머로 주황 기와지붕이 먼저 보인다. 미군이 짓고 살다 간 동네려니 짐작하기 쉽다. 순서는 반대다. 용산 미군기지 동남쪽에 붙어 있다가 1986년에 한발 앞서 반환된 이 땅에 대한주택공사가 미국식 이층집들을 지었고, 그 집을 미군에 세놓아 2019년 말까지 장교 가족들이 살았다. 말하자면, 우리 손으로 지어 남에게 먼저 내어 준 미국. 집에도 국적이 있다면 이 집들은 지어질 때부터 이중국적이다.

세든 이들이 떠난 마당을 집주인이 처음 밟아 본 때가 2020년 여름이니, 기지에서 돌아온 땅 가운데 맨 먼저 일상으로 열린 곳이 여기다. 지금은 예약도 입장권도 없이 그저 걸어 들어오면 된다. 이보다 수월하게 넘는 국경이 또 있을까.

문을 지나면 길라잡이라는 이름의 안내 라운지부터 나온다. 지도가 담긴 리플렛을 한 장 챙겨 나서는데, 안내도에 적힌 이름들부터 살갑다. 나들목, 새록새록, 들내봄내, 오손도손, 두루두루.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입안이 동글동글해지는 이름들이다. 간판은 영어인 동네에 새로 붙은 이름은 순우리말이어서 지도 한 장 안에서 두 시절이 겹치고, 떠난 쪽의 언어와 돌아온 쪽의 언어가 같은 판을 나눠 쓴다.

이층집 사이의 첫 산책

라운지를 나서면 그제야 동네가 시작된다.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이층집들과 그 지붕보다 훌쩍 큰 나무들, 그리고 잔디 사이로 가늘게 낸 시멘트 길. 벽마다 네 자리 동 번호가 흰 페인트로 큼직하다. 우거진 잎을 빠져나온 볕이 길 위에 동전처럼 잘게 흩어져, 옮겨 딛는 대로 발등에서 반짝인다. 정문에서 여기까지 걸은 거리래야 몇십 걸음. 그 사이에 나라가 하나 바뀌어 있다.

고개를 들면 지붕 꼭대기에 벽돌 굴뚝이 짧게 솟았다. 서울의 지붕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물건이다. 세모 지붕에 굴뚝까지 얹히니 집의 윤곽이 한층 먼 나라의 것이 되고, 기와의 얼룩에는 이 지붕이 지나왔을 서른몇 번의 장마가 배어 있다. 한참 올려다보고 나서야 길을 따라 천천히 안쪽으로 든다.

초여름이라 해도 한번 난 볕은 이미 여름의 것이어서, 길 위에는 양산이 하나둘 펴지고 다들 절로 그늘을 골라 딛는다. 빈손으로 온 사람은 라운지에 놓인 우산을 그냥 들고 나섰다가, 돌아갈 때 슬며시 제자리에 두면 된다. 말 없는 약속만으로 우산이 이 손 저 손을 돌고 돌아서, 처음 온 사람도 금세 단골 티가 난다.

낮은 벽돌담은 모퉁이를 직각으로 꺾는 대신, 천천히 쓴 필기체처럼 부드럽게 감아 돈다. 그 선을 따라 두 사람이 흰 양산 하나에 어깨를 모으고 걷고, 맞은편 벽 모서리에서는 담쟁이가 초록으로 번져 오른다. 코끝에는 볕에 달궈진 벽돌 냄새와 갓 자란 잎 냄새가 반반씩.

여기서는 서두르는 사람이 없다. 앞선 걸음이 느리니 뒤따르는 걸음도 덩달아 느려지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동네 전체가 같은 박자로 걷고 있다. 도시에서 데려온 잰걸음도 이 굽은 담을 몇 번 돌고 나면 슬그머니 풀려서, 잔디와 담 사이를 그저 어슬렁거리는 즐거움만 남는다.

그 박자로 걷다 보면 나무 그늘 쪽에서 노랫소리가 건너온다. 무대는 본래 건너편 광장에 선다는데 오늘은 더위를 피해 숲 안쪽으로 들어앉았고, 객석에는 캠핑 의자가 줄지어 놓여 무대 앞이 흡사 숲속 캠핑장이다.

의자에 앉은 사람과 그늘에 선 사람이 같은 후렴에 고개를 까딱인다.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일고, 그 소리는 잎사귀에 한 번 걸러져 동그랗게 퍼진다. 지나가던 사람도 그늘 끝자락에 서서 한 곡만 듣고 가려다, 한 곡이 두 곡이 되고 세 곡이 된다.

무대를 지나면 단지 한가운데의 잔디마당이다. 나무 그늘을 벗어나는 순간 하늘이 한꺼번에 넓어지고, 마침 구름이 물러난 참이라 볕이 마당 가득 쏟아져 내린다. 눈이 부셔 손차양을 만들며 몇 걸음 들어서면, 트인 잔디를 붉은 이층집과 우거진 나무들이 병풍처럼 빙 두른 풍경이 비로소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에 서서 찍어도 배경이 나오는 마당이라, 다들 볕 속으로 뛰어들어 사진 몇 장을 얼른 담고는 웃으며 그늘로 총총 돌아간다. 볕과 그늘 사이를 사람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들고 난다.

찍는 쪽과 찍히는 쪽은 수시로 자리를 바꾼다. 하나 둘 셋을 세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겹치고, 셔터 소리 사이로 웃음이 먼저 터진다. 붉은 벽 앞에서는 흰 옷이 제일 잘 받는다는 걸 다들 어디선가 배워 온 모양이고, 제 차례가 아니어도 남의 한 컷이 끝나기를 기다려 주는 일이 여기서는 예사다. 사진 찍기 좋은 동네라는 건 결국, 남의 사진을 기다려 주는 일이 아무렇지 않은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거울 앞에서도 다들 한 번씩 서 본다. 제 모습을 담으려고 서면 등 뒤의 붉은 집까지 함께 들어오고, 사진을 찍고 나서야 위에 적힌 YOU ARE SPECIAL을 읽고는 피식 웃는다. 지나는 이 모두에게 건네는 덕담치고는 수줍게 작은 글씨. 그 칭찬 한 줄에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화단에는 흰 꽃과 보랏빛 꽃이 한데 어울려 피었다. 역광을 받은 꽃잎은 가장자리부터 투명해지고, 만개한 송이들 틈에 덜 여문 봉오리가 숨어 있다. 허리를 낮추고 한참 들여다보게 되는 작은 정원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인데 화단은 여태 정갈하다. 사람이 살던 시절에는 창문 안의 몫이었을 아름다움이, 지금은 오가는 모두의 몫이다. 주인 없는 꽃이 아니라, 주인이 많아진 꽃이다.

사잇길은 연인들 차지다. 집과 집 사이 좁은 길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들어서면, 나뭇잎이 볕을 잘게 조각내 흩어 놓은 길바닥 위로 나란한 등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한다.

이 단지에는 지름길도 막다른 길도 없어서, 어느 사잇길로 들어서도 끝에는 붉은 벽과 잔디가 나온다. 길을 잘못 들 걱정이 없는 동네, 잘못 든 길이 곧 새 배경이 되는 동네다. 그러니 연인들은 일부러 길을 잃으러 이 사이사이로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현관이 열린 오픈하우스

붉은 벽은 배경으로만 서 있는 게 아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집들에는 사람이 살았다. 단지 안쪽, 오손도손이라는 문패가 붙은 집은 그 시절로 통하는 현관을 아예 열어 두었다. 미군 장교 가족이 살던 집 한 채를 그때 모습 그대로 남겨, 누구나 들어가 보게 한 오픈하우스다. 문가에 라탄 흔들의자가 놓여 있어서, 방금까지 누가 앉아 볕을 쬐다 들어간 집인가 싶다.

문턱을 넘어서면 바깥의 더운 공기가 한 겹 걷히고, 오래 비운 집의 마른 나무 냄새가 먼저 온다. 실내 흰 벽에는 이 집에 살던 가족의 사진이 액자로 걸려 있다. 남의 집 앨범을 들여다보는 일이 실례일 법한데, 주인이 보라고 걸어 둔 사진 앞에서라면 외려 인사에 가깝다. 한 장 한 장 눈을 맞추며 지난다.

액자 속에는 피아노 앞에 선 아이가 있고, 장난감을 벌여 놓은 탁자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나눠 쓰고 웃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니 이 방에 살았을 소리들을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피아노 소리, 방학이면 계단을 구르는 발소리, 저녁마다 웅얼거리는 텔레비전 소리. 낯선 나라의 담장 안에서 꾸린 살림이라 그리운 것도 많았을 텐데, 사진 속 얼굴들은 죄다 웃고 있다. 그리움과 웃음이 한집에 살던 시절의 기록. 액자 아래 서서, 남의 저녁을 잠시 빌려 산다.

문을 나서면 다시 여름이다. 어둑한 실내에 잠깐 길들었던 눈에 잔디의 초록이 한층 세게 들어오고, 걷혔던 더위가 어깨 위로 도로 내려앉는다. 마른 나무 냄새는 몇 걸음을 따라 나오다 볕에 익은 풀 냄새에 섞여 사라진다. 남의 시간에 들어갔다 나왔을 뿐인데, 마당의 오후가 조금 기울어 있다.

이국의 자취를 따라

이 동네를 걷는 재미의 절반은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잔디 너머에 빨간 공중전화 부스가 하나, 곁에는 같은 빨강의 우체통. 부스는 문이 반쯤 열린 그대로여서, 마지막으로 저 문을 밀고 나온 사람을 공연히 그려 보게 된다.

공중전화 부스라면 미국보다 영국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런 국적의 뒤섞임도 이 담장 안에서는 이상하지 않다. 이제 이 안에서 전화를 거는 사람은 없어도, 그 앞에서 사진을 남기는 사람은 줄을 잇는다. 세상에는 쓰임이 끝나고도 사랑받는 물건이 있다.

빨간 클래식카 한 대가 길가에 서 있다. 각진 보닛과 은색 엠블럼이 볕을 받아 반들거린다. 누구의 안목인지 부스도 우체통도 차까지, 벽돌과 꼭 같은 빨강으로 맞춰 놓았다. 붉은 벽돌 곁에 빨간 차체라니,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재간이 없다.

집 모퉁이마다 놓인 통들은 그 투박한 덩치부터가 어딘가 낯익다. 미국 영화의 뒷마당에서 보던 물건이라, 쓰레기통 하나까지 바다 건너의 규격이다. 부스나 클래식카야 보라고 두었다 쳐도, 쓰레기통까지 꾸몄을 리는 없다. 수거일 아침의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듯한 이런 무심한 구석이, 꾸며 둔 자리보다 살던 날들을 한결 가까이 당겨 놓는다.

낡은 도로 표지판 앞에도 사진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선다. 발치에는 여름 풀이 웃자랐고, 해가 들 때마다 나뭇잎 그림자가 붉은 벽 위에서 일렁인다. 표지판 하나가 전부인 구도인데도 그 앞에 서기만 하면 미국 어느 동네의 행인처럼 찍힌다. 미군 시절부터 서 있었을 진짜가 가진, 조용한 힘이다.

단지 가장자리 찻길가에서는 담벼락 한 면이 통째로 그림이다. 주황과 하늘색 팝아트 판에 불도그와 진돗개를 닮은 두 얼굴이 이웃해 걸렸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나라의 개가 한 벽에서 사이좋게 웃는다.

다만 그 웃음 위로는 철조망이 여전히 감겨 있다. 알록달록한 벽화와 가시 돋친 철사를 위아래로 얹은 담장. 아직 반쯤만 열린 이 땅의 지금이다. 언젠가 철사가 걷히는 날, 두 나라의 개는 그제야 마음 놓고 웃는 그림이 된다.

쉬어 가는 카페와 벤치

한낮을 넘기면 자연스레 잔디마당 곁 카페 쪽으로 방향이 잡힌다. 앞서 다녀온 이들이 잔을 하나씩 들고 나오는 걸 보면 다들 같은 마음인가 보다.

실내는 미국의 옛 커피 하우스처럼 꾸며 놓았고, 카운터 안쪽에서는 얼음이 컵에 쏟아지며 잘그랑거린다. 그 소리만 듣고도 목이 먼저 서늘해지는데, 아이스 커피를 받아 들면 컵의 냉기가 손바닥에 착 감기고 겉에 맺힌 물방울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진다. 한 모금에, 걸어온 길이 다 가라앉는다.

이 카페의 경계는 문이 아니라 그늘의 끝이다. 잔을 들고 나서면 나무 아래며 집 앞이며 의자와 벤치가 곳곳에 놓여서, 단지 전체가 테라스가 된다. 그날의 볕과 바람을 봐 가며 마음에 드는 그늘 하나를 고르는 일. 이 카페에서는 그게 주문의 마지막 순서다.

붉은 집 앞 긴 벤치에는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한창이라 이따금 웃음이 터지고, 좀처럼 일어날 기색이 없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사이에도 구름은 흘러서, 둘의 어깨 위로 볕이 들었다 나기를 거듭한다. 그늘에 앉아 보내는 시간은 시계 대신 하늘로 잰다.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볕이 옮겨 가고, 이야기가 이어지고, 얼음이 녹는다. 그 정도면 오후가 충분히 찬다.

기우는 오후, 모여드는 사람들

해가 조금씩 서쪽으로 기울고, 사람은 오히려 는다. 한낮에 수직으로 꽂히던 볕이 비스듬해지면서 벽돌의 붉음에 깊이가 생기고, 집들의 그림자가 길 쪽으로 슬금슬금 자라기 시작한다. 더위는 여전한데, 오가는 기색은 아까보다 느긋하다.

두 사람이 그림자를 반걸음 앞세우고 길 끝으로 멀어진다. 볕이 비껴 든 길은 한낮과 같은 길인데도 결이 달라서, 같은 벽 앞에서도 아까와 다른 사진이 나온다. 빛이 시시각각 바뀌는 동네라, 오래 머무는 사람일수록 사진첩이 두툼해진다.

흰 드레스 자락을 받쳐 들고 걷는 이들도 여럿 보인다. 살림이 끝난 동네에서 이제 막 시작하는 약속을 찍는다는 게 어쩐지 근사해서, 남의 촬영인데도 괜히 숨을 죽이고 지나게 된다. 길 건너에서는 흰 양산 아래 한 사람이 자세를 잡고 다른 한 사람이 사진 한 장을 찍느라 둘 다 잠시 멈춰 서고, 나무 아래 초록 의자들은 사람이 늘어도 정작 비어 있다. 앉아서 쉬기에는 다들 아직 담고 싶은 풍경이 많은 눈치다.

아이들이 뛰어놀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해가 더 기울고 바람이 선선해지면, 이 잔디는 아이들 뛰는 소리로 채워지지 않을까. 지금은 사람들이 모여 선 큰 나무 밑이 가장 북적인다. 그늘 안과 밖의 온도 차가 피부에 와 닿고, 데워진 공기에 잔디 냄새가 실려 온다.

공원의 가장자리에서

단지 안쪽의 전시관에는 이 땅의 지난날과 다가올 날이 함께 들어 있다. 역대 사진 공모의 당선작들이 걸렸는데, 그 사진들 속에는 방금 걸어온 벽과 마당이 다른 계절, 다른 눈으로 담겨 있다. 그 곁에는 용산기지 전체를 빚은 모형이 놓였다. 낮은 지붕이 빼곡한 판 위에서 현위치 팻말이 꽂힌 자리만 받침째 살짝 들려 있다.

미군이 캠프 서빙고라 부르던 이 동네가, 판 위에서는 가장자리의 손바닥만 한 조각이다. 이 조각 하나를 도는 데도 발품이 꽤 들었는데, 판 위의 나머지는 얼마나 넓은 걸까.

둘레로는 차도가 돌고, 그 바깥은 철조망 담벼락이 두른다. 완전한 개방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런 데서 몸으로 짚인다. 고개를 들면 기지 시절부터 박혀 있었을 콘크리트 전신주가 뭉게구름 앞에 우뚝하고, 거기서 뻗은 전선 몇 가닥이 하늘을 성기게 가른다. 구름 가장자리가 눈부시게 하얘지는가 싶으면 곧 해가 빠져나온다. 그 몇 초 사이에 발밑 그림자가 짙어진다.

발밑에도 지난 시절의 흔적이 있다. 아스팔트에 남은, 달리는 사람 모양의 그림. 온 가족이 살던 동네였으니, 집 사이를 내달리는 아이들을 조심하라는 표시로 읽힌다. 조심해야 할 아이들은 이제 없는데, 그림이 귀여워서 바닥을 찍겠다고 쪼그려 앉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봄의 목련, 여름의 초록

집 곁에 선 목련의 넓은 잎이 반들반들 짙다. 봄이면 흰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는데, 여름의 초록은 그만큼 붐비지 않아서 외려 호젓하다. 대신 벽돌의 빨강과 잎의 초록과 하늘의 파랑, 세 원색이 아무렇지 않게 한자리에 나란하다. 단풍의 가을과 눈 덮인 지붕의 겨울까지 생각하면, 다시 올 핑계가 철마다 하나씩 생긴다.

한때는 누군가의 집 벽이었을 자리가, 지금은 하루에도 수십 번, 처음 보는 이들의 사진에 담긴다. 벽돌의 붉음과 흰 페인트 번호, 검은 철제 난간 하나. 볕은 이제 벽 윗단에 얼룩으로 남고, 바람이 지날 때마다 나뭇가지 그림자가 그 위에서 가늘게 흔들린다. 잔디마당의 소리도 여기까지는 옅게만 닿는다. 그리다 만 그림 같은 여백이 좋아서, 떠나기 전에 그 앞에 한참 서 있게 된다.

정문을 나서기 전에 한 번 더 돌아본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주황 지붕들이 잠겨 있고, 마당 쪽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넘어온다. 볕에 달궈진 벽돌 냄새, 잎사귀에 걸러진 박수, 손바닥에 감기던 컵의 냉기, 흰 드레스 자락. 오늘 담장 안에 두고 가는 것들이다. 몇 걸음 밖은 다시 서울.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오후가 나란히 흐른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고, 초여름 하루가 등 뒤에서 아직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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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사기간: 화요일 ~ 일요일 (월요일 휴관)
  • 운영시간: 09:00 ~ 18:00
  • 교통: 경의중앙선 서빙고역 1번 출구에서 도보 5분
  • 공식 홈페이지 (새 탭에서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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