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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뚝섬한강공원 능소화 폭포, 주황빛으로 물든 한여름 담장
성동구계절뚝섬한강공원

뚝섬한강공원 능소화 폭포, 주황빛으로 물든 한여름 담장

여름의 서울에는 잠깐 피었다 지는 것들이 있다. 봄의 벚꽃처럼 도시를 통째로 들썩이지는 못해도, 아는 사람만 철 맞춰 챙겨 보는 짧은 풍경이 곳곳에 숨어 있다. 장마가 들이닥치기 직전 한 달 남짓, 담장을 물들였다 소리 없이 지고 마는 능소화도 그런 풍경의 하나.

능소화는 담을 타고 주황빛으로 흘러내린다. 그 흐름이 꼭 폭포를 닮아, 한강변의 이 담장은 지도에도 뚝섬 능소화 폭포라는 이름으로 오른다. 서울에 능소화로 이름난 자리가 더러 있어도, 꽃 이름이 아예 지명이 된 곳은 여기가 거의 유일하다. 일 년 중 그 벽이 가장 붐비는 며칠을 보러, 강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강변에 쏟아지는 한여름

2호선 성수역에서 내려 강 쪽으로 이십 분 남짓을 걷는다. 장마를 코앞에 둔 공기가 눅눅하게 살갗에 들러붙고, 저녁이 가까운데도 볕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는다. 그늘 한 점 없는 자전거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한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땀부터 흐른다. 회색 콘크리트와 마른 둔치, 멀리 다리 위를 지나는 차들, 어느 구간이고 엇비슷한 풍경.

그러다 한신아파트 나들목을 지나는 순간, 풍경이 돌변한다. 끝없이 이어지던 잿빛 옹벽이 한자리에서 통째로 주황으로 뒤바뀐다. 벽을 빈틈없이 뒤덮은 능소화가 짙은 초록 위로 주황을 쏟아 내는데, 그 기세가 한참을 걸어도 잦아들 줄 모른다. 더위에 무뎌졌던 눈이 단번에 트인다. 이름값을 한다. 정말, 폭포다.

가까이 다가서면, 멀리서 한 덩어리로 보이던 색이 송이송이로 흩어진다. 나팔처럼 입을 벌린 꽃과 아직 다문 봉오리가 한 줄기에 나란히 매달려 있다. 능소화는 본래 덩굴로 자라는 꽃인데, 조선에서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다 하여 양반꽃이라 불렸다. 그래서 지금도 한옥이나 고궁, 오래된 절집 담장에서 곧잘 만난다. 귀하게 대접받던 꽃이 강가의 평범한 옹벽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니, 격을 매기는 건 사람의 일이지 꽃이 알 바가 아니다.

덩굴식물답게 능소화는 벽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퍼져 내린다. 뿌리가 어디 박혔는지는 보이지 않고, 위에서 쏟아져 발치에 고이는 흐름만 남는다. 폭포라는 이름은 아마 거기서 났지 싶다. 마침 구름이 비켜 해가 들면 빛의 층이 한 겹 늘어나는데, 파란 하늘과 잿빛 옹벽, 그 사이를 메운 진득한 초록, 그 위로 다시 피어오르는 주황까지, 네 가지 색이 한 화면에 포개진다.

한참을 올려다보다 깨닫는다. 이 벽을 눈에 담은 게 나뿐일 리 없다는 걸. 고개를 내리면, 담장 앞은 이미 카메라를 든 손들로 빼곡하다.

능소화가 불러모은 사람들

꽃이 핀 자리에는 사람이 모인다. 다만 요즘의 모임은 결이 조금 다르다. 다들 꽃보다는 꽃 앞에 선 자신을 담으러 온다. 여름이 깊어지면 누군가의 피드가 온통 능소화로 물들고, 그 화면 속 주황이 또 다른 사람을 이 담장 앞으로 불러낸다. 본 것을 찍고, 찍은 것이 다시 누군가를 부르는 고리. 그 한가운데에서 꽃은 그저 말없이 핀다.

아무래도 여자들의 걸음이 많다. 둘셋씩 짝을 지어 와서는 나란히 붙어 셀카를 찍고, 번갈아 서로의 사진가가 된다. 한 사람이 자세를 잡으면 다른 한 사람이 무릎을 굽혀 각도를 살피기를, 마음에 들 때까지 같은 자리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혼자 온 사람의 시간도 못지않게 알차다. 팔을 길게 뻗어 화면 속 제 모습을 확인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세우고, 한 발 옮겨 다시 서기를 반복하는 동안, 남의 시선 따위는 진작에 접어 둔 얼굴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을 가장 좋게 남기려는 일에는 작은 용기 같은 게 깃들어, 제 흥에 온전히 빠진 뒷모습이 어쩐지 멋지기까지 하다.

담장이라고 다 같은 담장은 아니다. 자리마다 능소화가 자란 모양이 달라서, 어떤 데는 성기게 흩어지고 어떤 데는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중 덩굴이 처마처럼 드리운 한 자리가 단연 인기인데, 사나운 볕을 한 겹 걸러 주는 그늘 아래로 짙은 초록과 상큼한 주황이 사방을 두른다. 천장까지 꽃으로 채운 작은 방. 그 안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번갈아 담는다.

연인이 오면 사진가는 대개 남자 쪽이다. 휴대폰을 고쳐 쥐고 무릎까지 굽혀 가며 연신 셔터를 누르고는, 화면을 내밀어 인생샷이 잘 나왔는지 조용히 확인을 받는다. 마음에 든다는 대답이 떨어질 때까지 같은 포즈를 몇 번이고 다시 찍는 뒷모습에는, 웃음이 나면서도 어딘가 다정한 구석이 있다. 그렇게 공들이다가도 막상 둘이 나란히 서면, 카메라보다 꽃을 본다.

다행히 능소화가 넓게 퍼져 있어, 줄을 서거나 한 자리를 두고 다툴 일이 없다. 저마다 마음에 드는 구간을 골라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 멀찍이 물러서야 비로소 벽의 키가 가늠되는데, 사람 키의 몇 곱절로 솟은 담장 아래에서 사람들은 한껏 작아진다. 꽃 하나에 이만한 걸음이 모인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여기저기 낯선 말소리가 섞인다. 이런 자리를 어떻게들 알고 찾아오는지 신기하다가도, 한 번 눈에 담은 사람이라면 이 철의 서울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못할 테다. 잠깐 피는 꽃일수록, 본 사람과 못 본 사람의 여름이 갈린다.

빛이 기울며 짙어지는 주황

비가 온다던 날이다. 해가 났다가 구름에 가렸다가 하기를 종일 거듭한다. 그래도 구름이 한 번 걷히고 빛이 쏟아질 때면, 파란 하늘과 짙은 초록, 그 사이의 주황이 한꺼번에 살아난다. 볕이 들고 안 들고에 따라 담장이 내는 색이 전혀 달라서, 흐려졌다 밝아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같은 벽을 몇 번이고 새로 보게 된다.

빛을 가득 받은 능소화는 그 볕을 흠뻑 빨아들인다. 꽃잎 안쪽까지 환해져서, 잎과 잎 사이에서 한 송이씩 또렷이 떠오른다. 한낮의 쨍한 빛이 색을 납작하게 누른다면, 옆에서 비스듬히 드는 기운 볕은 꽃의 결을 하나하나 살려 낸다. 같은 주황이, 시간에 따라 다른 주황이 된다.

해가 더 기울수록 초록은 어둑해지고 주황만 남는다. 멀리서 보면 둥글둥글한 꽃송이가 잘 익은 귤 같기도 하다. 짙은 잎 사이사이 점점이 박힌 주황이 저물녘으로 갈수록 도리어 색을 더하니, 하루 중 능소화가 가장 능소화다워지는 때가 이맘때다.

자연이 내는 색에는 애써 꾸민 데가 없다. 누가 칠하지도 골라 심지도 않은 주황이 한 철 담장을 채웠다가, 장마가 한 번 지나가면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춘다. 한 달 뒤면 이 벽도 다시 무던한 초록으로 돌아갈 테다.

짧아서 더 짙은 색이 있다. 여름의 한복판, 강가의 담장 하나가 잠시 주황으로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짧음을 붙든다. 셔터를 누르거나, 그저 한참을 올려다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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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사기간: 개화 시기: 6월 말 ~ 7월 중순
  • 운영시간: 상시 개방
  • 교통: 2호선 성수역에서 도보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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