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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희우정로 벚꽃길, 동네 골목에 내려앉은 봄
마포구계절희우정로

희우정로 벚꽃길, 동네 골목에 내려앉은 봄

합정역 8번 출구를 나와 망원시장 쪽으로 걷는다. 4월 초의 공기는 한낮에도 끝이 차서, 외투를 벗기에는 아직 이르다. 골목은 여느 동네와 다를 게 없다. 낮은 빌라와 다세대 주택, 셔터를 반쯤 올린 가게들, 전봇대마다 뭉쳐 늘어진 전선. 그런 평범한 길을 몇 블록 걷다 보면 어느 어귀에서 갑자기 눈앞이 환해진다. 멀리서부터 길 위가 부옇게 밝아 오고, 가까워질수록 그 빛의 정체가 또렷해진다. 올려다볼 것도 없이, 희우정로다.

봄의 서울에는 벚꽃이라는 한철의 사건이 있어서, 그 며칠은 도시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곳으로 움직인다. 여의도 윤중로와 석촌호수처럼 이름난 길로 인파가 밀려가는 사이, 지도에 크게 적히지도 않은 이 좁은 이차선 골목에도 똑같은 봄이 내려앉는다. 다만 여기서는 벚꽃이 구경거리로만 피지 않는다. 사람이 살고 차가 다니고 트럭이 짐을 부리는 길 위로, 그냥 함께 핀다.

꽃 아래 멈춰 서서

신호가 걸려 차가 멈추는 틈마다 사람들이 슬그머니 차도 한가운데로 내려서니, 잠깐 비는 도로가 곧 가장 좋은 촬영장이 된다. 초록불이 켜지면 다시 인도로 물러서고, 멈췄던 차가 그 사이를 천천히 빠져나간다. 신호마다 되풀이되는 실랑이다.

길은 안으로 들수록 좁아지고, 양옆 벚나무는 키가 더 커진다. 가지가 길 위에서 맞닿아 천장을 이루고, 그 아래로 들어서면 햇빛이 한 겹 걸러져 분홍으로 깔린다. 가지 사이로 전선 한 가닥이 가로지르고, 가로등 하나가 꽃에 반쯤 묻혀 있다. 길 끝은 벚꽃에 잠겨 윤곽이 풀어지고, 어디까지가 길이고 어디부터가 꽃인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발밑에는 노란 중앙선이 길게 이어지고, 그 위로 사람들이 빠르게 흩어져 선다. 일행에게 휴대폰을 맡기고 터널을 등지고 서는 사람, 팔을 길게 뻗어 꽃과 제 얼굴을 한 화면에 담는 사람. 차가 다시 밀려들기 전의 짧은 틈이라, 다들 손이 바지런하다.

바람이 한 번씩 세게 분다. 봄바람이라도 끝이 아직 선득해서 목덜미를 스치는데, 그때마다 가지가 크게 술렁이고 꽃잎이 한 움큼씩 떨어져 공중에 흩어진다. 그 순간이면 여기저기서 짧은 탄성이 터진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서서 손바닥을 펴 그 꽃잎을 받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어 영상에 담는다. 셔터 소리가 짧게짧게 끊어지고, 신호에 걸려 멈춘 차의 낮은 엔진 소리가 그 아래에 깔린다. 바삐 걷던 사람도 이 길에서만은 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하늘에는 구름이 두툼해서 볕이 들었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한다. 구름이 비켜 해가 꽃 위로 쏟아지는 순간이면 분홍이 한층 짙어지고, 등에 잠깐 볕의 온기가 얹힌다. 마침 그 빛이 길가 어느 집 창에 고인다. 흰 외벽에 파란 창틀이 끼워진 작은 집인데, 안쪽에 켜 둔 노란 조명과 네모난 창틀, 그 위로 늘어진 가지가 그대로 하나의 무대가 된다. 그 앞에 한 사람이 서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일행이 각도를 맞춰 가며 그 한 컷을 담는다. 집 하나, 창 하나, 나무 하나. 그 앞에서 한 사람이 오래 자세를 고른다.

회색 시멘트 건물 모서리에 덮밥집 간판 하나가 붙어 있다. 벚나무만 없었다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흔한 길모퉁이다. 그런데 그 앞에 벚나무 한 그루가 서자, 같은 자리가 단숨에 딴 곳이 된다. 풍경이 바뀌니, 그 속의 사람들까지 달리 보인다. 유리창 안쪽, 김 오르는 덮밥을 느긋하게 뜨던 손님이 자꾸 수저를 멈추고 창 위쪽 가지를 올려다본다. 밥은 어느새 뒷전. 무거운 짐수레를 끄는 사람도, 고개를 들 때마다 입꼬리가 풀린다. 길을 가던 걸음들도 하나같이 시선을 땅에서 들어 머리 위에 둔다. 나무 한 그루가 꽃을 틔웠을 뿐인데, 그 아래를 지나는 얼굴마다 화색이 돈다.

워낙 빨리 지는 꽃이라, 이 며칠 길은 좀처럼 한산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의 물결에는 숨이 있어서, 한 무리가 멀어지고 다음 무리가 닿기 전 한순간 길이 헐거워진다. 회청색 담벼락 아래 벚나무 한 그루, 그 그늘에 검은 차가 한 대. 그 잠깐의 빈틈을 한 여성이 놓치지 않는다. 얼른 나무 밑으로 파고들어, 카메라를 든다.

혼자라 누구를 기다리게 할 일도, 누구에게 비켜 줄 일도 없다. 발끝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기며 각도를 고르고, 화면을 들여다보다 마음에 안 차면 한 발 물러섰다 다시 팔을 든다. 그러는 사이 어깨에 꽃잎이 앉아도 털어 낼 줄을 모른다. 등 뒤 벽돌담의 태극기가 바람에 한 번씩 펄럭이고, 그 위로 벚꽃이 소리 없이 진다. 남의 눈은 진작 접어 둔 얼굴이다. 제 한 컷에 온전히 빠진 뒷모습이, 혼자라서 외려 자유롭다.

낮게 우는 엔진 소리가 다가오다 신호 앞에서 멎는다. 오토바이 두 대가 나란히 서서, 발을 땅에 짚고 초록불을 기다린다. 어디로든 달릴 수 있는데 굳이 이 좁은 길을 코스에 끼워 넣었나 보다. 누구는 걸어서, 누구는 두 바퀴로 같은 며칠을 지난다. 신호가 풀리면, 두 사람은 분홍 아래로 천천히 미끄러져 사라진다.

날마다 그 꽃 아래

희우정로를 따라 양옆으로는 세월이 묻은 주택이 빼곡하다. 낡은 붉은 벽돌과 흰 창틀 위로 분홍이 드리우니, 갈라진 페인트 자국도 벽돌 줄눈에 낀 묵은 때도 그 빛에 묻혀 든다. 매끈한 새 건물보다 손때 묻은 이런 벽에서, 벚꽃은 한결 깊어 보인다.

벚나무 가지가 이층 창을 반쯤 가리고, 그 사이로 파란 하늘이 조각조각 비친다. 문득 저 창 안에 사는 사람이 궁금해진다. 이맘때면 아침마다 커튼을 걷는 순간 창 가득 꽃이 먼저 들어차지 않을까. 창을 열면 방 안까지 꽃잎이 날아들지도 모른다. 구경하러 온 사람에게는 일 년에 한 번 보는 풍경이지만, 여기 사는 사람에게는 해마다 돌아왔다 곧 떠나는 봄. 그 짧음을 가장 잘 아는 건 날마다 보는 쪽이다.

담을 따라가다 보면 전선과 실외기가 어지럽게 얽힌 벽도 나온다. 도시의 골목이 으레 그렇듯, 머리 위는 검은 전선이 거미줄처럼 지나고 벽에는 실외기가 아무렇게나 매달려 있다. 그런데 그 위로 벚꽃이 흐드러지니, 얽히고설킨 선들이 분홍에 한 겹 묻혀 부드러워진다.

골목 한쪽 서울우유 대리점 앞에는 배달 트럭 한 대가 그대로 서서 주말 하루를 쉰다. 평일이면 동트기 전부터 우유 상자를 싣고 골목골목을 돌았을 트럭인데, 오늘은 시동을 끄고 꽃 그늘에 머문다. 흰 차체 위로 꽃잎이 한 장 두 장 내려앉아 어느새 얇게 쌓이고, 볕이 드는 동안 철판은 미지근하게 데워진다. 그 곁으로는 바쁜 날에 없던 적막이 고인다. 부지런히 달리던 것이 하루 쉬는 자리에도, 봄은 빠짐없이 와 닿는다.

지는 꽃을 등지고

길가에는 오래된 집들 사이로 카페와 식당이 드문드문 섞여 있다. 봄볕 드는 창가 자리는 어디나 차 있고, 한 자리가 비면 그새 다른 누군가의 차지가 된다. 인도는 걸음으로 빽빽해 어깨가 자꾸 스치는데, 머리 위로 어지럽게 얽힌 전선 사이로도 벚꽃은 아랑곳없이 흐드러진다.

눈에 담을 만큼 담은 사람들은 슬슬 발길을 돌린다. 벚나무 그늘이 드리운 길을 따라 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멀어진다. 늦은 점심을 찾아가는 걸음도, 다음 벚꽃 길로 향하는 걸음도 있을 테다. 한참을 머물렀어도, 누구에게나 돌아갈 하루가 있다.

그렇게 돌아서는데 바람이 또 한 번 분다. 이번에는 꽃잎이 더 많이 떨어진다. 붉은 벽돌담 위 가지에서 꽃잎이 눈처럼 쏟아져 내리고, 자세히 보면 그 사이로 연둣빛 새잎이 벌써 비친다. 꽃이 한창인가 싶은데, 나무는 어느새 다음 잎을 밀어 올린다. 만개는 곧 짐의 시작이기도 하다. 가려던 발이 그 자리를 다시 못 뜨고, 소리 없이 지는 것들을 한참 바라본다.

며칠만 지나면 이 꽃은 다 진다. 가지에는 잎이 차오르고, 길은 다시 여느 날로 돌아간다. 발밑에 얇게 깔린 꽃잎을 밟으며 천천히 걷는다. 일 년 중 바로 이 며칠, 멀리서 찾아온 사람도 날마다 이 길을 지나는 사람도 같은 자리에서 함께 고개를 든다. 봄이 이 길에 머무는, 짧은 동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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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사기간: 개화 시기: 3월 말 ~ 4월 초
  • 운영시간: 상시 개방
  • 교통: 2호선 합정역 8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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