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과 나무로 물든 보라매, 2025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보라매공원에서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손꼽게 크고 늘 말끔히 가꿔진 공원이라, 평소에도 사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런 공원이 큰 행사를 맞아 한 철을 통째로 단장했을 테니,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신대방역에 내려, 출구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괜히 마음이 앞선다.
공원에 들어서며
역을 나서면 공원 입구가 바로 눈앞이다. 정문 위로 박람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리고, 길을 따라 세운 안내판마다 행사 이름이 적혀 있다. 길을 끼고 선 담벼락마저 페튜니아로 덮여, 보라와 분홍과 붉은빛이 벽돌 위로 쏟아질 듯 흐드러진다. 아직 입구일 뿐인데도 들어서는 길부터 손이 많이 간 게 보인다. 무엇이든 첫인상이 중요한데, 이 박람회는 입구에서 이미 마음을 얻는다.
안으로 더 들면, 화려하게 단장한 길 위에도 공원의 하루는 평소처럼 느긋하게 흐른다. 햇볕 아래로 강아지가 통통 뛰어가고 그 뒤를 주인이 느린 걸음으로 따른다. 한쪽에서는 팔을 휘저으며 운동 삼아 공원을 도는 사람도, 연못가 벤치에 앉아 버드나무 그늘에 한낮을 맡긴 사람도 보인다. 박람회를 보러 온 걸음과 그저 바람을 쐬러 나온 걸음이 한자리에 섞인다. 그 한가로운 모습에 자꾸 눈이 가는 걸 보면, 여유에는 시선을 붙드는 힘이 있나 보다.
박람회를 맞아 공원의 정원도 새 단장을 했다. 오래 자리를 지킨 화단은 말끔히 정돈되고, 그 사이사이로 새로 들인 정원이 한 칸씩 놓였다. 어떤 자리는 키 큰 나무 아래 그늘을 그대로 살리고, 어떤 자리는 돌을 둘러 작은 화단을 앉혔다. 하나하나가 눈을 끌어 천천히 걷던 걸음이 더 느려지는데, 초여름의 볕과 막 자리 잡은 풍경이 어색함 없이 어울린다.
잔디광장의 해치
수풀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나무보다 높이 솟은 분홍빛 머리가 먼저 눈에 든다. 해치다. 그 큰 얼굴을 보자마자 발이 절로 그리로 향한다. 잔디광장 한가운데에서 해치와 친구들이 차례로 찾아온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 주는데, 누구는 두 팔을 번쩍 들고 누구는 브이를 그리며 저마다 다른 포즈로 카메라 앞에 선다. 그래도 표정만은 하나같이 밝다. 커다란 인형 하나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웃는 게 신기해서, 그 앞에 서면 괜히 이쪽 기분까지 환해진다.
광장을 두른 계단에는 전에 없던 화려함이 덮여 있다. 곱게 엮은 장미가 트렐리스를 타고 올라 붉은 터널을 이루고, 그 아래로 사람들이 줄지어 드나든다. 파란 격자와 붉은 꽃이 맞물린 한 칸이, 어딘가 먼 유럽의 정원을 옮겨 놓은 듯하다. 평소 무심히 오르내리던 계단이, 한 철 사이에 전혀 다른 자리가 됐네.
장미는 한 가지 색에 머물지 않는다. 붉고 분홍이고 흰빛이 한자리에 섞여 큰 팔레트로 초여름을 그린다. 화분마다 가득 담긴 꽃 앞에서 사람들의 걸음이 멈추고, 저마다 카메라를 들이대 가장 탐스러운 송이를 담는다. 꽃 앞에서는 누구나 잠깐 사진가가 된다.
축제에 먹거리가 빠질 수 없지. 광장 한켠으로 푸드트럭이 줄지어 서서, 커피와 군것질거리 냄새를 햇볕에 풀어 놓는다. 그 냄새가 먼저 코를 잡아끄니, 멀리서 찾아온 사람도 동네 산책을 나온 사람도 그냥은 못 지나치고 하나둘 줄을 선다. 하긴, 꽃구경만으로 배가 부를 리 없지.
수국에 둘러싸인 강아지
광장을 빠져나오면 가장 먼저 눈을 붙드는 건 수국에 둘러싸인 강아지다. 구멍이 송송 뚫린 연분홍 조형물이 폴짝 뛰어오른 자세로 섰는데, 꽃과 같은 빛이라 수국 더미에서 막 솟아오른 모양새다. 분홍과 자주, 연보라와 청보라까지 온갖 빛의 수국이 한자리에 무더기로 부푸니, 그 화려함에 눈이 부시다. 한 가지 색만 모았어도 고왔을 텐데, 이렇게 여러 빛을 섞어 두니 눈이 어디에 머물지를 모른다. 그 앞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한다.
산책길에서 마주친 것들
길을 따라가면 곳곳에 데이지가 무리 지어 핀다. 누가 심어 둔 자리를 넘어, 빈 화면을 채우듯 제멋대로 번졌다. 흰 꽃잎과 노란 꽃심의 짜임은 들여다볼수록 군더더기가 없다. 화려한 장미를 실컷 보고 온 눈에도, 이 흔한 꽃이 도리어 새삼스럽다.
잔디밭 한쪽에는 서울 미니달이 수줍게 떠 있다. 이름처럼 둥근 달을 닮았는데, 한낮의 빛 속에서는 도리어 조용하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깔리면, 그제야 이 자리에 노란 온기를 풀어 놓을 것이다. 낮의 공원만 보고 가는 걸음에는 그 밤의 풍경이 못내 아쉽다.
길을 따라 여러 작가의 정원이 잇따른다. 풀과 키 작은 나무로 짠 정원 너머로 멀리 도심의 빌딩이 흐릿하게 서는데, 도시 한복판이라는 걸 잠시 잊고 걷다가 그 윤곽에 문득 다시 떠올린다. 정원마다 짠 사람의 손길이 달라, 하나를 들여다보다 다음 정원으로 옮길 때마다 발길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한쪽에는 오래전 들어섰을 장미 터널이 있다. 박람회를 위해 새로 꾸민 자리가 아니라, 공원이 오래 길러 온 덩굴이다. 세월이 앉은 가지에도 붉은 꽃이 그득해, 포플러 사이로 햇빛을 등지고 늘어진다. 갓 단장한 정원들 틈에서, 이 오래된 터널은 또 다른 결로 듬직하다.
그 터널 아래, 떨어진 꽃잎이 길을 분홍으로 덮었다. 그 위를 까치 한 마리가 종종 걷는다. 사람이 가꾼 정원 한가운데서도 새는 제 볼일로 바쁘다. 꽃에도 사람에도 아랑곳없는 그 걸음이, 어쩐지 더 오래 눈에 남는다.
조금 더 걷다 보면 돌로 쌓은 정원에 들어선다. 그러자 돌 틈 사이로 난데없이 안개가 피어오른다. 옅은 안개가 그늘 아래 검은 돌을 슬그머니 감싸며 번지는데, 한여름으로 가는 길목인데도 이 자리만 유독 서늘하다. 눈을 꽃으로 채우던 길에서, 잠시 다른 감각으로 건너온 기분이다.
그늘 아래 세워 둔 공원 카트마저 어쩐지 한 폭의 풍경이 된다. 이 많은 정원을 누군가 날마다 손본다는 뜻이다. 꽃이 저절로 핀 게 아니라 누군가의 새벽을 빌려 핀 거라 생각하면, 카트 한 대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여러 작가의 서로 다른 시선이 모여, 공원 하나를 이렇게 고르게 채운다.
메타몽 가든
정처 없이 떠돌다 줄지어 선 사람들을 만난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니, 넝쿨과 등불을 두른 아치에 METAMONG GARDEN이라 적혀 있다. 꽃 구경만 하다 뜻밖에 만난 포켓몬이라 반갑지. 줄은 금세 줄어, 오래지 않아 안으로 든다.
보라색 수국 사이마다 메타몽이 한 마리씩 늘어앉았다. 수국과 같은 연보랏빛이라 꽃밭에 자연스레 어우러지는데, 큼직한 몸을 둥글게 부풀린 채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찾아온 사람을 맞는다. 꽃밭 하나가 통째로 메타몽 차지가 되었다. 꽃으로 가득하던 정원에 느닷없이 캐릭터가 들어찼는데도, 보라색 하나로 묶이니 영 어색하지가 않다.
트랙에 찍힌 발자국
이제 나가려는데 작은 트랙 하나가 눈에 든다. 강아지만을 위해 낸 길이다. 보라색 바닥에 노란 발자국이 콕콕 찍혀 동그랗게 이어지는데, 어쩐지 그 발자국을 좇아 몇 바퀴를 천천히 돌아보게 된다.
사람을 위한 정원 곁에, 강아지들이 뛸 자리까지 나란히 둔 공원이다.
꽃과 조형물과 작은 정원을 천천히 짚어 가다 보니, 한나절이 훌쩍 지났다. 멀리 떠날 것도 없이, 늘 곁에 있던 공원이 이렇게 하루를 가득 채워 준다. 돌아 나오는 길에도, 그 색이 눈에 한참 남는다.
찾아가기
네이버 지도에서 열기- 행사기간: 2025년 5월 22일 ~ 2025년 11월 2일
- 운영시간: 상시 개방
- 교통: 2호선 신대방역 또는 7호선 보라매역에서 도보 10분
- 공식 홈페이지 (새 탭에서 열림)